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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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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8일 새벽,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했다.

'에픽 퓨리 작전'이라 불린 이 합동 공격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몇 시간 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모든 선박에 무선 경고를 날렸다. "어떤 배도 통과할 수 없다."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31%가 통과하는 폭 39km짜리 좁은 물길이 사실상 막혀버렸다.

그 결과는 빠르고 잔인했다.


유가가 얼마나 올랐나

전쟁 발발 전 배럴당 60달러 후반대에 머물던 WTI 유가는, 전쟁 9일째인 3월 9일 배럴당 107.54달러로 치솟았다. 하루 상승률 14.85%. 브렌트유도 102.20달러로 100달러 선을 돌파했다. WTI 기준 세 자릿수 유가는 2022년 7월 이후 3년 9개월 만이다.

더 무서운 건 앞을 내다보는 숫자들이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를 통한 원유 흐름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달 말까지 배럴당 150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JP모건과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120~130달러를 전망했다. 이란 군부는 아예 200달러를 경고하며 에너지 전쟁을 선포했다.

선박 피해도 이어지고 있다. 전쟁 발발 이후 12일 동안 최소 15척이 공격받았고, 유조선 150척, 컨테이너선 130~170척이 페르시아만 일대에 발이 묶여있다. 이란은 해협에 기뢰까지 설치하고 있다는 징후가 포착됐다.


왜 아시아가 가장 아프냐

미국은 셰일오일 덕분에 중동 원유 의존도가 낮다. 유럽도 북해산 원유와 파이프라인이 버팀목이 된다. 그런데 한국, 일본, 대만은 다르다. 중동산 원유가 아시아로 나오는 길은 사실상 호르무즈 하나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2026년 1월 기준 70.2%다. 가스 역시 한국이 쓰는 양의 20%가 이 해협을 통해 들어온다. 대체 루트인 희망봉 우회는 운송 시간이 몇 주씩 늘어나고 비용은 50~80% 뛴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역사상 가장 큰 공급 충격"으로 평가한다. 2023년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공격 때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들은 말했다. "현재 확보한 민간 물량으로는 3월 말을 버티기 힘들다." 일부 정유사는 공장 가동률을 30% 미만으로 낮추는 방안까지 검토 중이다.


한국 경제가 받는 삼중고

3월 9일, 한국 금융시장은 세 방향에서 동시에 얻어맞았다.

원·달러 환율은 1,495.5원을 기록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코스피는 외국인 3조 2천억 원 순매도와 함께 5.96% 급락했다. 삼성전자 -7.81%, SK하이닉스 -9.52%, 현대차 -8.32%. 주요 종목이 줄줄이 무너졌다. 한 달 사이 서킷브레이커가 두 번 발동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이걸 '삼중고'라고 부른다. 고유가 + 고환율 + 고물가가 동시에 터진 상황이다. 유가가 오르면 수입 단가가 오른다. 거기에 환율까지 올라있으면 원화로 계산한 수입 비용은 더 뛴다. 이 두 충격이 물가로 번지면, 한국은행은 금리를 올려야 할지 내려야 할지 갈림길에 선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는 미국 인플레이션이 6%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한국도 비슷한 압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나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역사상 최대 규모인 4억 배럴의 전략비축유 방출을 결정했다. 한국도 2,246만 배럴 방출 계획을 발표했다. 청해부대는 비상 대기 상태다. 정부는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전격 시행하며 민생 충격 완화에 나섰다. 화학 기업들은 원료 공급 문제로 수출 계약에 '불가항력'을 선언하기 시작했고, 해운사 HMM은 중동 항로 운항을 전면 중단했다.

비축유로 버티는 시간은 있다. 그런데 전쟁이 장기화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체 공급처 확보가 관건인데, 미국산·호주산 원유로의 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마무리 — 우리는 지금 어디 서 있나

이번 사태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약점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에너지 자원이 없는 나라가 중동 한 지역에 원유의 70%를 의존하는 구조. 지정학적 충격 하나에 금융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취약성.

장기화될수록 스태그플레이션, 즉 성장은 멈추고 물가만 오르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가까워진다. 전문가들은 이미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 2.0%의 하향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

투자자 입장에서 이 국면을 읽는다면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은 유가 방향을 맞히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내 자산이 이 충격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 구조인지 점검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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