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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100달러 시대, 한국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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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가격표를 보며 "아, 생각보다 안 올랐네"라고 느꼈다면, 그 안도감이 오히려 위험 신호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국제 원유 시장은 난리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고, 미군이 이란의 석유 수출 핵심 거점인 하르그 섬을 공습하면서 이란은 보복을 선언했다. 호르무즈 해협 — 전 세계 원유의 약 20%가 통과하는 이 좁은 해협이 막힐 수도 있다는 공포가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주유소는 조용하다. 오히려 어제보다 리터당 12원이 내렸다.

이게 진짜 괜찮은 걸까.


지금 글로벌 시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이번 유가 상승은 단순한 수급 불균형이 아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하면서 중동 전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란은 상선을 표적 삼아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경고를 보냈고, UAE와 쿠웨이트는 이미 해상 석유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해협 봉쇄가 지속될 경우 이번 달에만 걸프 지역 원유 약 790만 배럴, 액체 연료 총 990만 배럴의 공급이 끊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는 4분기 브렌트유 전망치를 71달러로 상향했는데, 이건 사태가 악화되기 전 보수적 시나리오다. 현재 시장은 이미 100달러를 넘겼다.

한 주 만에 원유 가격이 약 35% 올랐다. 1983년 선물 시장 도입 이후 역대 최대 주간 상승폭이다.


한국 정부가 꺼낸 카드 — 석유 최고가격제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해서 주유소가 기름을 특정 가격 이상으로 팔지 못하게 막은 것이다. 덕분에 소비자 가격은 눌려 있다. 오늘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1,851원대다.

정책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당장 서민들의 교통비 부담이 덜어진다. 물가 불안 심리도 일단은 잡힌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다. 국제 유가가 35% 올랐는데 한국 기름값은 내렸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간단하다. 정부가 그 차액을 메우고 있는 것이다. 세금을 깎거나 비축유를 풀거나 보조금을 얹는 방식으로. 그 돈은 결국 국민 세금이다.


한국에 닥칠 수 있는 4가지 위험

첫 번째 — 재정 폭탄

최고가격제는 국제 유가와 국내 판매가의 차이를 정부가 떠안는 구조다.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이 보조를 계속하면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실제로 일본은 비슷한 보조금 정책을 수년째 유지해왔는데, 지금 오히려 더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

두 번째 — 가격 충격의 압축

억눌린 가격이 한꺼번에 터지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정부 재정이 한계에 달하거나, 정책을 지속할 정치적 여건이 흔들릴 때다. 그 시점에 소비자들이 맞닥뜨리는 유가 인상은 점진적 상승보다 훨씬 가파른 충격으로 온다.

세 번째 — 물가 연쇄 반응

유가는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물류비, 제조 원가, 식품 가격, 난방비까지 줄줄이 올라간다. 잠깐 눌린 기름값이 결국 다른 가격들을 통해 스며들 수 있다.

네 번째 — 기업 경쟁력 악화

에너지 집약 산업인 석유화학, 철강, 반도체 제조 공정의 원가가 올라간다. 글로벌 경쟁사들과 같은 유가 상승을 겪되, 한국 기업들은 환율 부담까지 이중으로 안는다.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원유 수입 비용은 원화 기준으로 더 가파르게 오른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지금 한국의 '유가 안정' 뉴스는 안심해도 된다는 신호가 아니다. 폭탄의 뇌관을 눌러두고 있는 상황에 가깝다.

현명한 개인이라면 이 시간을 준비의 시간으로 써야 한다. 에너지 비용이 오를 때 어떤 지출이 늘어나는지 점검하고, 자산 배분에서 에너지 관련 인플레이션 헤지를 고민해볼 시점이다. 금, 원자재 관련 자산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 정책이 버텨줄 수 있는 기간 동안, 조용히 대비하는 것.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행동이다.

기름값이 안 올랐다고 안도할 게 아니라, "왜 안 올랐지?"를 먼저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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